2026-09-13 · 성지안 (부원장)

웰다잉은 2035년 한국의 표준이 될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352만 명과 병원 임종 75.4%가 가리키는 죽음 준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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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35년에 어디서 어떻게 죽게 될까요

핵심은 준비의 확산 속도와 현장의 수용 능력이 따로 논다는 점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적 등록자는 2025년 8월 말 기준 352만 222명으로 늘었지만, 실제 임종은 여전히 의료기관에서 이뤄집니다. 2023년 기준 임종 장소는 의료기관 75.4%, 주택 15.5%였습니다. 장기요양 수급 노인의 67.5%가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고 답했는데 실제 재택 임종은 14.7%에 그쳤고요. 호스피스 병상은 전국 1,815개, 인구 100만 명당 28개 수준입니다. 웰다잉의 미래는 서류에 서명하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그 서명이 실행되는 장소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목차

요양병원 6인실에서 마지막을 본 가족의 기록

연구원이 2년 전 인터뷰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여든넷이던 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4년을 앓았고, 마지막 아홉 달을 요양병원에서 보냈습니다. 가족은 아버지가 평소 "집에서 조용히 가고 싶다"고 말해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무도 그 말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딸은 직장을 다녔고, 아들은 다른 지역에 살았습니다. 가정간호를 받으려 했지만 야간에 상태가 나빠지면 대응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흡인이 필요해지면서 결정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요양병원에 모셨고, 임종 이틀 전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아버지는 6인실 커튼 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이 가장 오래 후회한 대목은 의외였습니다. 연명의료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언제부터가 마지막인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아버지가 3년 전에 써 두셨습니다. 서류는 있었고 의사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서류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만 정하고 있었지, 남은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는 한 줄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공백이 지금 한국 웰다잉 제도의 정확한 위치입니다.

웰다잉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웰다잉(well-dying)은 삶의 마지막 시기를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 전반을 가리킵니다. 국내에서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습니다.

세 가지 서로 다른 제도

용어가 자주 섞여 쓰이기 때문에 구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구분내용시점
사전연명의료의향서19세 이상이 향후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미리 등록건강할 때
연명의료계획서말기·임종기 환자가 담당의사와 함께 작성진단 이후
호스피스·완화의료통증과 증상을 관리하며 삶의 질을 돌보는 의료 서비스말기 진단 이후

앞의 둘은 무엇을 중단할지를 정하는 문서이고, 셋째는 무엇을 제공할지를 정하는 서비스입니다. 많은 사람이 의향서만 써 두면 준비가 끝났다고 여기는데, 그 서류는 치료 중단의 근거일 뿐 돌봄을 자동으로 불러오지 않습니다.

안락사와는 다릅니다

연명의료 중단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서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처럼 사망 시점만 늦추는 시술을 하지 않는 결정입니다. 약물로 사망을 앞당기는 조력사망과는 법적·의학적으로 전혀 다른 범주입니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숫자로 본 현재: 352만 명과 75.4%의 간극

등록자 구성부터 보겠습니다. 2025년 8월 말 기준 누적 352만 222명 가운데 여성이 232만 1,508명, 남성이 120만 1,714명으로 여성이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연령대는 70대 135만 5,511명, 60대 105만 4,618명, 80세 이상 60만 9,015명 순이었습니다.

성별 격차가 큰 이유는 여러 갈래로 해석됩니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며 임종 과정을 목격한 경험, 보건소나 복지관처럼 등록 창구가 있는 공간에 여성 고령자의 접근이 잦다는 점이 함께 작용합니다. 어느 쪽이든 남성 고령자의 준비율이 낮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습니다.

호스피스 쪽 숫자는 더 완만하게 움직입니다. 대상 질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022년 22.4%에서 2023년 25.1%로 올랐습니다. 유형별로는 입원형이 14.4%에서 15.6%로 늘어난 반면, 가정형 단독 이용은 0.9%에서 0.7%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정부는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에서 2028년까지 전문기관을 두 배로 늘리고 이용률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비암성 질환 쪽입니다. 2023년 암 이외 4개 질환 사망자 1만 4,150명 가운데 호스피스를 새로 이용한 사람은 71명, 0.5%에 불과했습니다. 심부전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오래 앓다 떠나는 사람들은 제도의 바깥에 있는 셈입니다.

집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

희망과 현실의 격차는 네 겹으로 쌓여 있습니다.

첫째, 야간과 주말의 공백입니다. 통증이 심해지거나 호흡이 나빠지는 순간은 시간을 가리지 않습니다. 24시간 연락이 닿는 의료진이 없으면 가족은 119를 부를 수밖에 없고, 그 순간 임종 장소는 응급실로 정해집니다.

둘째, 돌보는 사람의 부재입니다. 1인 가구가 늘고 자녀 세대가 다른 지역에 사는 구조에서 재택 임종은 가족 한 명의 휴직을 전제로 합니다.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구는 많지 않습니다.

셋째, 사망진단 절차의 부담입니다. 의료기관 밖에서 사망하면 검안 절차가 따라오고, 가족은 이 과정을 잘 모릅니다. 번거로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병원행을 앞당깁니다.

넷째, 시설의 총량입니다. 호스피스 병상 1,815개, 인구 100만 명당 28개라는 수치는 대기 기간을 뜻합니다. 가정형 호스피스 이용자는 2,245명으로 전체의 9.2%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대기하다 임종하는 사례가 실제로 보고됩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인프라 문제입니다. 인식 개선 캠페인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영역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2035년 죽음 준비 시나리오 세 갈래

2035년이면 1955년생 이후 베이비부머가 80대에 진입합니다. 연간 사망자 수는 지금보다 크게 늘어납니다. 향후 10년의 갈림길을 세 갈래로 정리해 봤습니다.

시나리오 A — 병원 임종의 고착

인프라 확충이 사망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의료기관 임종 비율이 80%를 넘어서고, 요양병원이 사실상의 임종 시설로 굳습니다. 서류상 준비는 늘었는데 경험의 질은 나빠지는 역설이 이 경로의 특징입니다.

시나리오 B — 재택 임종의 회복

방문진료와 재택의료 수가가 정착하고, 야간 상담 체계가 지역 단위로 깔리는 경우입니다. 재택 임종 비율이 30% 선까지 오르고, 가정형 호스피스가 입원형의 보조가 아니라 독립 선택지가 됩니다. 이 경로의 관건은 병상 수가 아니라 이동하는 인력입니다.

시나리오 C — 지역 완화의료 거점 모델

중간 형태입니다. 생활권마다 소규모 완화 돌봄 거점을 두고, 집에서 지내다 마지막 며칠만 거점에서 보내는 방식입니다. 영국의 호스피스 하우스나 일본의 지역포괄케어가 참고 사례로 거론됩니다. 초고령사회 대응 논의와 주거 정책이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현재 지표만 보면 A와 C 사이 어딘가로 흐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개인이 준비해 둘 항목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장례와 애도의 방식도 함께 바뀝니다

죽음 준비는 의료 영역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장례 문화 쪽 변화가 오히려 더 빠릅니다. 3일장을 축소하거나 가족과 가까운 지인만 부르는 소규모 장례가 늘었고, 화장률은 이미 90%를 넘겨 매장을 전제로 한 전통 절차가 실질적으로 해체된 상태입니다. 봉안 대신 자연장을 택하는 비율도 꾸준히 올라가는 중입니다.

여기에 1인 가구의 증가가 겹칩니다. 상주가 될 사람이 없는 죽음, 이른바 무연고 사망은 매년 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공영장례를 조례로 정해 치르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는데, 제도가 뒤늦게 현실을 따라가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사전 장례 의향과 디지털 정리

최근 상담 현장에서 늘어난 항목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장례 방식을 본인이 미리 정해 두는 사전 장례 의향서입니다. 부고를 누구에게 알릴지, 조문을 받을지, 유골을 어떻게 할지를 적어 둡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가족의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확인됩니다.

다른 하나는 계정과 사진, 구독 서비스 같은 디지털 자산의 정리입니다. 남겨진 가족이 접근 권한을 찾지 못해 몇 달을 헤매는 일이 흔합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죽음 준비 항목에서 이 영역의 비중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걸로 봅니다.

죽음 준비 교육의 자리

노인복지관과 평생학습관을 중심으로 죽음 준비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유언장 작성, 관계 정리, 애도 실습 같은 구성이 일반적입니다. 참여자 반응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는데요, 죽음을 준비했더니 남은 시간의 계획이 오히려 또렷해졌다는 것입니다. 웰다잉 논의가 결국 웰빙 논의와 한 몸이라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준비 4단계

1단계 — 의향서 등록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지정 의료기관 등 전국 등록기관에서 무료로 작성합니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고, 상담을 거쳐 등록하면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에 보관됩니다. 언제든 철회하거나 변경할수 있다는 점도 알아 두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2단계 — 서류 밖의 문장을 남기기

의향서는 하지 않을 일을 정합니다. 여기에 하고 싶은 일을 따로 적어 두면 가족이 실제로 결정할 때 기준이 생깁니다. 어디서 지내고 싶은지, 통증 조절을 어디까지 원하는지, 누구를 부르고 싶은지 세 줄이면 충분합니다.

3단계 — 가족과 한 번은 소리 내어 말하기

문서만 남기고 대화를 건너뛰면 가족은 결정의 순간에 서류를 신뢰하지 못합니다. 명절이나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날처럼 자연스러운 계기를 쓰는 편이 좋습니다. 실제 상담 현장에서는 부모가 먼저 꺼내는 경우보다 자녀가 자기 의향서를 먼저 쓰고 이야기를 여는 쪽이 대화가 수월했습니다.

4단계 — 호스피스 정보를 미리 확인

말기 진단을 받은 뒤에 알아보면 늦습니다. 중앙호스피스센터에서 지역별 전문기관과 유형을 미리 확인해 두고, 가정형을 운영하는 기관이 생활권 안에 있는지 체크해 두면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FAQ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면 치료를 못 받게 되나요? 아닙니다. 의향서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 들어섰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된 이후에만 효력이 생깁니다. 그 전까지의 모든 치료와 통증 관리는 그대로 받습니다. 항암치료나 수술을 거부하는 문서가 아니라는 점이 자주 오해됩니다.
등록은 어렵지 않나요? 비용이 드나요? 무료이며, 보건소나 공단 지사에서 신분증만 있으면 상담 후 30분 안에 마무리됩니다.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이 가능한 기관도 있습니다. 다만 상담 없이 서면만 제출하는 방식은 인정되지 않으므로 방문이 필요합니다.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치료를 포기하는 건가요? 완화의료는 치료의 중단이 아니라 목표의 전환입니다. 질병을 없애는 대신 통증·호흡곤란·불안 같은 증상을 관리해 남은 기간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집중합니다. 국내외 연구에서 완화의료를 일찍 시작한 환자군이 삶의 질뿐 아니라 생존 기간에서도 불리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보고돼 왔습니다.
가족이 반대하면 제 의향서는 무시되나요? 본인이 직접 등록한 의향서는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다만 현장에서는 가족의 이견으로 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서 등록과 함께 가족에게 미리 알리는 과정이 실질적으로 중요합니다.
기존 방식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지나요? 과거에는 임종이 임박한 시점에 가족이 급하게 결정했습니다. 본인의 뜻은 추정될 뿐이었고, 남은 가족은 오래 죄책감을 안았습니다. 미리 준비하는 방식은 결정의 주체를 본인으로 되돌리고, 가족에게는 결정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역할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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