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0 · 천준영 (수석연구원)

리빙랩이란 무엇일까? 시민이 실험실이 되는 문제해결 방식과 성대골 태양광 사례, 국민생활실험실 4년 사업까지 미래 생활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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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랩이란 무엇이고 왜 미래 생활 실험으로 주목받을까?

리빙랩의 출발점은 시민을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를 함께 정의하는 동료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리빙랩(Living Lab)은 실험실을 실제 생활 공간으로 옮겨, 시민·정부·기업·대학이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개방형 혁신 방식입니다. 유럽에서는 2006년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가 출범하면서 40여 개국으로 퍼졌고, 국내에서도 2017년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가 만들어진 뒤 2025년에는 4년짜리 국민생활실험실 사업까지 이어졌습니다. 핵심은 기술을 먼저 만들고 시민에게 건네는 순서를 뒤집는 데 있습니다.

목차

동네 골목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 이야기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겨울마다 반복되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로등은 밝은데 정작 계단과 담벼락 사이는 어두워서, 밤에 귀가하던 주민들이 자주 넘어졌다고 합니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예산 편성 후 검토"라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흔한 풍경이죠.

그런데 이 골목에서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민 예닐곱 명이 모여 직접 밤길을 걸으며 어두운 지점을 지도에 표시했고, 근처 대학의 공학 동아리가 태양광 센서등 시제품을 몇 개 붙여봤습니다. 한 달 동안 어디에 달았을 때 사람들이 덜 넘어지는지를 같이 기록했는데요. 처음 달았던 위치 절반은 효과가 없어서 옮겨 달았습니다. 이렇게 실제 생활 공간에서, 그 공간을 쓰는 사람들이 직접 실험에 참여하는 방식이 바로 리빙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패한 절반입니다. 연구실에서 설계도만 봤다면 "센서등을 달면 안전해진다"로 끝났을 문제가, 생활 현장에서는 "어디에 다는지가 절반을 가른다"는 구체저인 정보로 바뀌었습니다. 미래 생활 시나리오를 종이 위 예측이 아니라 현장 데이터로 검증한다는 점, 그것이 리빙랩이 미래전망 방법론으로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리빙랩이란 무엇인가: 실험실을 생활로 옮기다

리빙랩을 글자 그대로 풀면 살아있는(Living) 실험실(Lab)입니다. 유럽리빙랩네트워크 ENoLL은 리빙랩을 "체계적인 사용자 공동창조 방식에 기반한, 사용자 중심의 개방형 혁신 생태계"로 정의합니다. 조금 딱딱한 문장이지만, 핵심은 두 단어입니다. 사용자 중심, 그리고 공동창조.

기존의 기술 개발은 대체로 한 방향이었습니다. 연구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만들고, 다 만든 뒤에 사용자에게 "써보세요"라고 건넸죠. 이 순서에서 시민은 마지막 단계의 소비자이자 평가자일 뿐이었습니다. 리빙랩은 이 순서를 처음부터 뒤집습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첫 단추부터 시민이 들어옵니다.

4중 나선(Quadruple Helix)이라는 구조

리빙랩을 지탱하는 뼈대는 흔히 4중 나선 모델로 설명됩니다. 시민, 정부(공공), 기업(산업), 대학(연구)이 각자 다른 자원을 들고 한 테이블에 앉는 구조인데요. 누가 무엇을 맡는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주체리빙랩에서 맡는 역할
시민생활 속 문제 발굴, 현장 경험 제공, 시제품 실사용
정부·공공정책 연계, 예산과 실증 공간 지원, 제도 반영
기업·산업기술·제품 개발, 시장 확산과 상용화
대학·연구과학적 근거, 실험 설계, 효과 측정과 분석

이 네 축이 빠짐없이 물려 돌아가야 리빙랩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예컨대 시민 없이 기업과 대학만 모이면 그건 그냥 실증 사업에 가깝습니다.

리빙랩을 리빙랩이게 하는 5가지 요소

ENoLL은 리빙랩이 갖춰야 할 요소로 다섯 가지를 꼽습니다. 능동적 사용자 참여, 실제 생활 환경,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여러 방법을 섞는 접근, 그리고 공동창조입니다. 이 다섯을 관통하는 정신은 다름아닌 "현장에서, 함께"입니다. 실험실 유리창 안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사는 곳에서 검증한다는 원칙이죠.

이 방식이 특별한 이유는 문제의 성격에 있습니다. 기후변화, 도시화, 사회 불평등처럼 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 문제를 학자들은 '난제(wicked problem)'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문제는 전문가 한 집단의 지식만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답이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리빙랩은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냅니다. 여러 관점을 한 실험 안에 섞어 넣고, 현장에서 부딪혀 가며 그 상황에 맞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죠. ENoLL이 2006년 출범한 이래 유럽을 넘어 40여 개국으로 퍼진 배경에도, 각 나라의 도시와 마을이 저마다 다른 난제를 안고 있다는 사정이 있습니다.

성대골과 북촌: 국내 리빙랩이 실제로 풀어낸 문제

국내에도 리빙랩을 명시하고 추진된 사례가 적지않은데요. 성지은·한규영·정서화 연구진이 정리한 국내 리빙랩 사례 분석을 보면, 북촌 리빙랩, 성대골 리빙랩, 건너유 프로젝트가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과학기술·ICT를 지역 문제 해결과 연결했고, 지역 주민이 문제 발굴부터 기술 실험, 확산까지 전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성대골 미니 태양광 리빙랩

서울 동작구 성대골은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삼은 마을입니다. 여기서는 도시 주택에 미니 태양광 발전 설비를 다는 실험이 진행됐는데요. 단순히 패널을 설치하고 끝낸 게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전기 사용을 기록하고 어떤 설치 방식이 실제 절감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확인했습니다. 기술을 주민에게 배포한 것이 아니라, 주민이 기술의 조건을 만들어냇습니다.

이 차이는 결과의 지속성으로 나타납니다. 위에서 내려온 설비는 고장 나면 방치되기 쉽지만, 주민이 설계 과정에 참여한 설비는 스스로 관리 주체가 생깁니다. 미래 주거의 에너지 문제를 다룰 때 리빙랩이 자주 소환되는 이유입니다.

기존 방식과 무엇이 달랐나

같은 "동네에 태양광을 깐다"는 사업이라도 접근이 이렇게 갈립니다.

구분기존 하향식 사업리빙랩 방식
문제 정의행정·전문가가 결정주민이 함께 발굴
시민의 위치사업 대상·수혜자공동 실험자·설계자
검증 장소시험실·시범 단지실제 생활 공간
실패의 의미사업 종료다음 실험의 데이터

표를 보면 리빙랩의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실패조차 버리지 않고 다음 실험의 재료로 쓰는 태도가 핵심입니다.

국민생활실험실과 정책 흐름은 어디로 가는가

리빙랩은 이제 동네 단위 실험을 넘어 국가 정책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후원으로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 포럼이 시작됐고, 격월로 열린 이 포럼은 어느새 18차를 넘겼습니다. 광주·대구·부산·전북·경남·대전 등지에서 지역별 네트워크가 생겼고, 대학 리빙랩 네트워크도 따로 꾸려졌습니다.

가장 최근의 흐름은 국민생활실험실입니다. 2025년 4월 1일부터 2028년 12월 31일까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장애인·노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보조기기 실용화 연구개발을 리빙랩 방식으로 추진합니다. 4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잡은 사업인데요. 보조기기는 특히 실험실에서 완성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같은 휠체어라도 사용자의 생활 반경, 집 구조, 손의 힘에 따라 필요한 조정이 전부 달라서, 실제 사용자가 오래 써보며 풀어야할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이 미래전망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에서 돌봄과 자립 기술의 수요가 급격히 늘기 때문입니다. 국내 기업의 스마트 안전 리빙랩이 유럽 ENoLL에 가입해 해외 실증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나왔는데요. 생활 현장에서 검증된 기술이 국경을 넘는 통로가 리빙랩을 통해 열리고 있는 셈입니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과거 국가 연구개발은 논문과 특허 같은 성과 지표에 크게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생활연구나 국민생활실험실처럼 '생활'을 앞에 붙인 사업들은, 성과의 기준을 실험실 밖 삶의 변화로 옮깁니다. 몇 편을 발표했느냐가 아니라 몇 사람의 하루가 실제로 나아졌느냐를 묻는 것이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시민이 참여하는 리빙랩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정부 R&D에서 리빙랩이 예외적 실험이 아니라 기본 설계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빙랩을 직접 시작하는 4단계

리빙랩은 거창한 연구 조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파트 단지, 학교, 작은 마을 단위에서도 시작할수 있습니다. 처음 해본다면 아래 순서가 도움이 됩니다.

  1. 문제를 시민의 언어로 정의하기. "스마트 도시를 만들자" 같은 큰 구호 말고, "겨울마다 이 계단이 얼음판이 된다" 같은 구체적 불편에서 출발합니다. 문제가 작고 선명할수록 실험이 쉬워집니다.
  2. 4중 나선 파트너 모으기. 주민 모임, 관할 행정,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이나 대학을 한 자리에 부릅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고, 각 축에서 한 명씩만 있어도 시작됩니다.
  3. 작게 실험하고 기록하기. 완성품이 아니라 시제품으로, 한두 곳에만 먼저 적용해 봅니다. 무엇이 나아졌는지 숫자와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다음 단계의 근거가 됩니다.
  4. 실패를 반영해 다시 실험하기. 첫 시도의 결과를 보고 위치나 방식을 바꿔 재실험합니다. 이 반복 자체가 리빙랩의 본체입니다. 한번에 정답을 맞히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이 4단계를 관통하는 원칙은 "만들고 나서 묻지 말고, 만들면서 물어라"입니다. 미래 생활을 함께 만들어가는것은 결국 이 작은 반복의 축적입니다.

2035년, 생활 실험은 무엇을 바꿀까

앞으로 10년, 리빙랩은 몇 가지 방향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큽니다. 첫째는 돌봄과 주거입니다. 초고령사회에서 노년 친화 주택, 돌봄 로봇, 자립 보조기기 같은 기술은 실험실만으로는 완성이 어렵고, 사용자가 오래 써보는 리빙랩이 사실상 필수 경로가 됩니다.

둘째는 도시 설계입니다. 걸어서 필요를 해결하는 15분 도시나 에너지 자립 마을 같은 구상은 도면이 아니라 생활에서 검증돼야 하는데요. 주민이 참여해 동선과 시설을 시험하는 리빙랩이 도시계획의 앞단으로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는 기술의 신뢰 문제입니다. 생성형 AI나 자율주행처럼 일상에 깊이 들어오는 기술일수록, "실험실 성능"과 "생활 속 체감"의 간극이 큽니다. 리빙랩은 이 간극을 좁히는 검증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만 과제도 분명합니다. 참여하는 시민이 늘 특정 계층에 쏠린다면, 리빙랩이 만든 미래가 모두의 미래가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구를 실험에 초대하느냐가 곧 어떤 미래를 설계하느냐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리빙랩은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여러 번 미리 살아보는 방식입니다. 종이 위 시나리오보다 느리지만, 현장에 뿌리내린다는 점에서 더 단단합니다.

FAQ

리빙랩과 일반적인 실증 사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큰 차이는 시민의 위치입니다. 실증 사업에서 시민은 완성된 기술을 써보는 평가자에 가깝지만, 리빙랩에서는 문제를 정의하는 첫 단계부터 참여하는 공동 설계자입니다. 시민·정부·기업·대학의 4중 나선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만든다면 리빙랩, 기술을 다 만든 뒤 반응만 본다면 실증에 가깝습니다.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나요? 오히려 전문 지식이 없는 생활 감각이 리빙랩의 핵심 자원입니다. 어디가 불편한지, 무엇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기술 설계는 기업과 대학이 맡고, 시민은 문제 발굴과 실사용 검증을 맡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리빙랩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요? 빠른 방식은 아닙니다. 국민생활실험실처럼 4년 단위로 잡는 사업도 있습니다. 대신 현장에서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완성 후 외면받아 방치되는 위험이 줄어듭니다. 초기에 느린 대신 지속성과 실사용 정착률에서 이점을 얻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 동네에서 작게 시작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작고 구체적인 문제 하나를 고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다음 주민 몇 명, 관할 행정 담당자, 관련 기술을 가진 대학이나 기업을 연결해 시제품을 한두 곳에 적용하고 결과를 기록합니다.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의 지역 포럼이나 자료를 참고하면 비슷한 사례의 시행착오를 미리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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